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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역사

진주만 공습 이후 대일본 선전포고를 반대한 미국 최초 여성 하원의원

by 서래후작 2022. 9. 30.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1941년 12월7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다음날인 12월8일 긴급 소집되 의회에서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해줄 것을 요청하는 연설을 했다. 

 

상원에서는 만장일치로, 하원에서는 388대 1로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결의했다. 

 

자국 해군과 공군이 불시에 기습을 당해 군인 전사자만 2300여명, 부상자 1천여명, 민간인 사상자 100여명이 발생하고, 전함 4척 침몰, 1척 좌초, 3척 손상에 항공기 188기 손실을 당하는 등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데, 일본을 향한 선전포고에 반대한 1명의 하원의원이 있었다. 

 

그는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인 저넷 랭킨(Jeannette Pickering Rankin, 1880년 6월11일~1973년 5월18일)이었다. 

 

미국 몬태나주 미줄라 카운티 출신인 그녀는 몬타나 대학교를 나왔고, 1916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의원으로 처음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두 번의 도전 끝에 1940년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된다. 

 

 

그녀는 전쟁에 반대한 이유에 대해 "저는 여자이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 또한 반대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증오감이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랭킨은 온갖 비난과 협박을 받았다. 물론 재선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녀의 그러한 선택이 소신있는 용기였다고 재평가돼 이를 기념하는 동상이 미 의회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인데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너무 심하게 객기를 부렸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과연 남성들만의 전유물인가? 전쟁은 인류 역사 그 자체이다. 전쟁에서 지면 남자들만 죽고 끝나는게 아니라 여성도 큰 피해를 입는다. 

 

랭킨이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워싱턴 DC의 안전한 의사당에서 그런 고상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동안에도 세계 곳곳에선 수 많은 여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불과 4년 전인 1937년에는 중국 국민정부의 수도 난징이 일본군에 함락당하며 도시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하고 학살당했다.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그해 6월에는 독일이 소련을 향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며 러시아 영토로 대군을 밀어넣고 닥치는대로 러시아 일반 여성들을 강간했다. 

 

이후에 소련이 1945년 베를린 공방전을 끝마칠때까지 동프로이센부터 동부 독일에선 200만명이 넘는 독일 여성들이 소련군에 의해 보복성 강간을 당하게 된다.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어땠나?  

 

일본군은 점령지 전역에 종군위안소를 설치하고 현지 여성을 비롯해 피점령국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로 모집했다. 이 중엔 다른 인종인 네덜란드 백인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서부 해안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일본군은 필리핀에 상륙해 루손섬 전체를 점령하고 닥치는대로 필리핀 여성들을 강간했다. 만약 하와이에 상륙했다면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전쟁은 으레 그런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타고난 DNA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전쟁 강간은 승전국 남성이 타국 여성에 대한 정복의식을 행하는 행위이다. 패배자는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과거부터 전쟁과 강간을 뗄 수가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고대 시대부터 여성은 노예와 같은 재산에 불과했다. 그리스 국가들은 시민의 자격으로 자신의 재산이 있는 자유인과 군 복무를 하는 남성만을 인정했다. 이는 로마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고대 민주사회는 참정권 역시 남성에게만 부여했다. 

 

 

여성 참정권은 여성이 국방의 의무에 본격적으로 기여를 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해방된 흑인 노예 남성들보다 나중인 1920년이 돼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남성이 모두 전쟁터에 나갔을 때 탄약 등의 생산에 여성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됐기 때문에 여성의 '국방 기여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참정권 부여의 원리는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도 목격된다. 조선인들이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수십만 단위로 징병이 되니 일본 의회에서는 조선인에게 내지인(일본 본토인)과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지하게 시작된다.

 

 

즉 물리적인 힘이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실질적인 힘은 정치적 권리 확대를 가져오는 것이다. 

 

 

과거 여성들은 강간을 하면 그냥 강간을 당하는 대상이었고, 그렇게 새로 생긴 지아비를 섬기며 살아갔다. 로마 멸망 당시 로마 여인들이 그러했다. 게르만 야만족 전사들이 로마를 겁탈하고 여인들을 나눠가진 순간부터 그들은 더이상 로마인이 아닌 게르만족의 아내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들어서며 민주주의가 생겨나고, 여성이 전시 생산설비에 동원되며 실질적으로 국방에 기여하게 되자 여성 역시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이로 인해 전시 성범죄 문제가 더욱 많이 다뤄지게 됐고 여성의 인권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보호받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랭킨은 최초의 하원의원으로서 전쟁과 여성에 대해 어떤 이해가 있었을까? 자국 청년 수천명이 불의한 기습으로 유명을 달리했는데도, 거국적인 단결로 적에 맞서 싸우는데 일조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독특한 정치철학을 쇼맨십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객기였다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쯤에서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0년 화제를 일으켰던 EBS 수능 동영상 강의의 강사인 장희민씨의 발언이 다시 생각이 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25/2010072500032.html

 

EBS 女강사 "군대는 죽이는 거 배워오는 곳"

EBS 女강사 군대는 죽이는 거 배워오는 곳

www.chosun.com

 

 

장씨는 도중에 "남자들은 군대갔다왔다고 좋아하죠 그죠? 자기 군대갔다왔다고 맨날 뭐 해달라고 떼쓰잖아요? 그걸 알아야죠. 군대가서 뭐 배우고와요? 죽이는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놓으면 걔네들은 죽이는거 배워오잖아요? 뭘 잘했다는 거죠 도대체가?"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장씨의 말처럼 군대는 사람을 죽이는 법을 훈련하는 곳이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내 가족과 국가를 해하려는, 강간하려는 적군을 죽이는 훈련을 하는 곳이란 말이 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며 내 가족을 강간하고 학살하려는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 강사가 역사에 대한 좁쌀만큼의 이해라도 있었다면 과연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인간 역사의 가장 주요 문제인 전쟁과 그로 인해 여성이 받는 피해에 대한 이해도 없다면 수능이 무슨 소용이고 대학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최초의 여성 정치인이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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