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생활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by 서래후작 2023. 5. 30.

부처탄생일 3일 휴가를 맞아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를 떠났다. 

 

5월 26일 밤(금요일) 11시에 내려가 새벽 2시 30분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전체 구간 20km가 넘는 힘든 여정이었다. 종주에 12시간 정도가 걸린것 같다. 

 

 

밤에는 산을 타면서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1.4km 구간'이 극악의 난이도로 분류가 돼 있었다. 관악산 정도 난이도를 생각하고 온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급경사 돌길이 끝나지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밤새워 산을 오르자 해가 떴다. 

 

 

소공원에서 출발해 마등령 방향으로 가는 길에 찍은 산줄기다. 저 능선을 모두 넘어야 한다... 

 

잠깐 지도를 보고가자. 우측 상단에 보면 신흥사에서 2.3km 평지를 걷는다. (3km정도 된다) 

밤새워 오른 것이 까만색 1.5km 구간이다. 까만색은 극강의 난이도이다.  

저기서 2km를 더 가서 마등령 삼거리부터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함께 온 일행들에게 민폐가 될 까봐 계속 가기로 했다. 

 

마등령 삼거리에 도달하기 전까지 사진을 많이 찍었다. 뒤돌아보니 해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가 겨우 오전 7시 밖에 안됐다. 등반을 시작한지 5시간 정도가 지난 것. 산등성이 너머로 속초시와 동해바다가 보인다. 

 

 

대자연 안에 들어와 있으니 속세의 모든 번민이 사라져감을 느꼈다. 지금 가진 걱정은 20km 종주를 끝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뿐. 

 

공룡능선을 타면서 사진 찍을 생각 따위는 많이 사라졌다. 때론 휴대폰이 방해가 돼서 그냥 가방 주머니에 눌러넣고 거의 안 끄내봤다. 간혹 잠시 쉬는 구간마다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남는건 사진밖에 없으니. 

 

킹콩바위란다. 정말 고릴라 옆모습 같다. 웃겨서 찍었다. 

 

해발 1217m라고 찍힌 안내판. 공룡능선 한가운데다.. 중도 포기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위치번호가 찍혔다는건 구조대가 올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설악산 사진 한 컷.

 

실은 공룡능선부터 희운각대피소까지 1.5km를 남겨주도 극심한 탈수 증상이 왔다. 입에서 침 한방울도 안나오고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함께 온 일행 2명은 먼저 앞서 갔고 나만 뒤에서 천천히 가다가 이 사단이 난 것. 

 

정신력으로 대피소까지 걸어가는데, 산에서의 1.5km는 체감상 4km 정도 같다.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2L물을 한패트 사 마셨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관악산 생각하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왔기 때문에 500ml 옥수수차 한병 들고 온 것이 잘못이었다. 

 

 

이제는 희운각대피소에서 다시 비선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시원한 설악산 폭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에메랄드 빛 계곡수가 한국에 존재하는게 신기하다. 태평양의 섬에 와 있는 기분이다. 

 

좋다.

 

시원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종주를 모두 마치고 신흥사로 내려왔다. 

백숙을 먹자고 약속했지만 더이상 어딜 갈 기운이 없어 그냥 주변에 아무 식당에 들어가 파전, 제육볶음, 돈가스, 잔치국수를 시켜먹었다. 

 

나의 나약함과 대자연의 무서움, 그리고 오랜만에 체력의 한계를 찍어본 귀한 경험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