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린도전서 7장 36절을 묵상했다.
개역개정보다 이 구절은 킹제임스흠정역이 더 본연의 의미를 잘 전달한다고 생각해서 킹제임스흠정역 버전의 말씀을 올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처녀 딸이 꽃다운 나이를 넘기면 자기가 그 딸에게 합당하지 못하게 처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으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라. 그가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그들이 결혼하게 하라(고린도전서 7장 36절-킹제임스흠정역)'.
But if any man think that he behaveth himself uncomely toward his virgin, if she pass the flower of [her] age, and need so require, let him do what he will, he sinneth not: let them marry.
고린도전서 7장은 사도 바울의 처녀에 대한 권면을 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또 정욕을 불태울 바에야 결혼을 하라고 종용한다.
같은 장 25절에는 사도 바울이 "이제 처녀들게 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명령이 없으나 [주]의 긍휼을 받아 신실하게 된 자로서 내 판단을 주노라"라고 얘기한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시점을 말세지말로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남자건 여자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가가고 시집을 가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장가를 가고 시집 감으로 인하여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를 한다.
그렇다. 수십년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가 부부로 묶인 다는 것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고난이 따라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고 들볶아대도, 결국 부부는 그 고난을 딛고 나아가며, 서로를 세워주는 존재이다. 바울이 말한 고난은 '결혼을 하면 큰일 난다'라는 경고가 아니라, 원래 그러한 일들이 으레 따라 온다는 설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36절에는 처녀 딸의 '꽃다운 나이'라는 어휘가 등장한다. 남자에겐 해당하지 않는 개념이다.
바울이 살던 제정(帝政) 로마 초기, 로마인 남성은 평균 나이 40세 쯤에 결혼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로마 시민이 로마 군단병으로 복무를 하고 퇴직금과 퇴직 농지를 수여받고 자리를 잡는 시점이 대략 40세였다고 하니, 고대 로마 남성들이 현대 대한민국 남성들보다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빠르면 14~5세부터 20세 전에는 결혼을 하기 마련이다. 바로 바울이 얘기하는 '꽃다운 나이'이다.
흔히들 여자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들을 한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 구조가 복잡화 돼도, 여자는 가장 여자 답게 아름다운 나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나이가 보통은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이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자의 '아름다움' 에는 '얼굴+몸매+나이'가 포함돼 정량값을 이룬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나이'를 간과하기 때문에 인생을 좀 더 즐기겠다고, 사회 구조가 다변화 됐다며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다.
30대가 돼도 자신이 관리만 잘하면 결혼 쯤은 쉽게 할 수 있다라고 서로를 속이고 세뇌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남자는 나이든 여자를 단번에 알아본다. 가까이서 보면 화장을 가득 먹은 얼굴 아래로 팔자 주름이 드러난다. 눈매에서도, 목에도 주름이 잡혀 있다.
나이든 여자는 단순히 나이만 든게 아니다. 정신까지 늙어 있다. '꽃다운 나이'때 이미 대학생활을 하며, 신혼방을 차려본 경험들이 있다. 자취방 원룸에서 남자친구와 성적 방종의 끝을 달려봤다. 그러니 30살 여자들 대부분이 정신까지 늙은 사실상 이혼녀들이다. 이들을 어디에 데려다 줘도 만족을 모르고 감사를 모르며 기쁨이 없다.
반면 20대 초반 여성에겐 조금만 근사한 선물을 해줘도 활기발랄하게 웃고 즐거워 한다. '꽃다운 나이'만이 가지는 특권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낯설고 설레는 일들이다. 그러니 남자는 '처녀'에 끌린다. '처녀'는 어리다. 바울은 바로 이 가장 기본적인 남성들의 시각인 '꽃다운 나이'가 여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남성중심적이라고? 당연히 남성 중심적이다. 왜냐?
연애는 여자가 선택할지 몰라도, 결혼은 전적으로 남자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의 결정권자인 여자도 남자의 외모, 직업, 키, 재산을 줄세우지 않나? 결혼의 주체인 남자는 당연히 자기가 선택할 짝을 남자의 시각에서 고르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점을 간과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30세를 넘겨서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심지어 호기롭게 '비혼주의'를 외치기도 한다. 20대때 남자들이 수도 없이 들이댈때는 비혼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말하지만, 30세가 넘어가면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제는 한국 남성들도 변하고 있다.
당장에 교회들부터 자매들에 대한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 그들에게 '꽃다운 나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때 하는 결혼이 가장 인정 받는 결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부터 세상적인 기준으로 남자들의 조건을 보며 거기에 '신앙'까지 더해버리니, 노(처)녀 자매들이 교회에 넘쳐 흐르는 것이다.
오늘 날의 한국 기독교는 사회 유지관리에 철저하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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